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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서가

​​그 날의 기억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

​​문, 그리고 변화

여전히 혼란스런 세상에서도 어떻게든 삶을 연장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독려하던 우리에게 다가온 변화는 급작스러웠다. 옆에 있던 사람들의 손에서 불이 나가고, 예순 먹은 할망구가 갑자기 젊어져선 괴력을 뽐낸다고 생각해봐라. 그리곤 나도 다친 팔이 멀쩡해지고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어느 언어를 내뱉어서 커다란 얼음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지금이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이런 힘을 숨겨야만 했을 것이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과는 다른, 특이한 소수의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시기하거나, 또는 차별하려 하니까. 원래의 세계였다면 우리들은 어둠에 숨어 우리들의 정체를 최대한 숨겨야만 했을테고.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다리 길쭉한 개니, 인간 머리통에 고라니 몸통을 단 것들이 울어재끼는 시간에는 이런 것은 특이한 것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특별한 것이 되어 우리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그 혼란스런 세상 속에서 우리들은 점차 살아남는 법에 대해 배웠다. 살기 위해선 그것들을 죽여야만 했다. 놈들의 뼈를 깎아 날카롭게 만들고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문장을 정리하여 더욱 빠르게 외울 수 있어야 했다. 숭고한 목적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도 아닌. 단지 우리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점차 우리들의 손에 죽는 것들이 많아지고 우리들을 보고 두려워하던 눈빛들이 점차 무심해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우리들을 돈에 미쳤다느니, 돈이 될 법한 곳을 찾아다니니 하며 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욕들이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 말대로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내가 살기 위해 가치 있는 것들을 모으겠다는데 저들이 우리에게 뭐라고 할 이유는 뭔가? 단지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은 것들을 사냥했을 뿐이다.
저들이 우리를 사냥했던 것처럼, 우리도 저들을 사냥했을 뿐이다.

​​사냥의 역사

​​사냥감이 되지 말고, 사냥해라. 네가 가치를 둔 것이 일순위가 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네 목숨에 가치를 매기게 될 것이다.

사냥의 역사는 의념이 탄생한 순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게이트의 발생, 문이 열리고 수많은 몬스터가 떨어지는 순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류. 그리고 멸망에 가까워지던 인류의 마지막.

그순간 인류에게 던져진 날조차 제대로 서지 않았던 창을 들고 인류는 싸우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류가 죽고 다쳤으며, 무의미한 죽음을 맡는 경우도 수없이 존재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했듯 그순간에 영웅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 위대한 빛들의 인도 아래 세계는 불안정한 평화를 맞이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인용했다. 특별한 소숫점의 사람들보다도 특별하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더 많았더라고. 빛이 되지 못할 반딧불이들은 커다란 빛의 아래에서 제 꽁무니를 빛내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세계가 안정화되기 시작하고, 의념의 힘이 진지하게 연구되기 시작하며 게이트의 물건들이 가진 가치가 제대로 들어나기 시작했을때. 우리들 역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들을 좋게 보지 않았다. 단지 자신들이 도망치던 때에 자신들을 돕지 않았다고, 자신들이 위험할 때 우리들은 가까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그럼 그순간에 우리들은 희생해야만 했을까? 우리들에겐 저 밝은 빛만큼의 광원이 없었다. 단지 아슬아슬하게 빛낼 수 있는 작은 빛이 겨우였다. 자신들의 목숨은 소중하면서 우리들의 목숨은 소중하지 않았단 말인가? 우리들은, 단지 죽을 존재였단 말인가?

개소리 치우라지. 우리들은 살아남고자 했고, 우리들의 힘으로 살아남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들이 구한 목숨의 가치도 적지 않은 수라 할 수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우리들을 무시하고, 욕하기 바빴다. 마치 우리가 저들을 구할 의지가 없었던 것처럼.

그래. 우리들은 사냥꾼이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의 칼과 활을 들었던 것처럼. 우리들은 우리만의 규칙으로 살아갈 것이다.

사냥의 역사 하나.

사냥감이 되지 말고, 사냥해라.

사냥의 역사 둘.

네가 가치를 둔 것을 일순위로 두어라.

사냥의 역사 셋.

그 무엇도 네 목숨보다 소중하진 않다.

위 세가지를 누구보다 먼저 새기도록 해라.

헌터란 그런 존재니까.

- 최초의 헌터 헨리 파웰.

세계관 서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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